도전은 아기의 걸음마처럼
도전의 과정에는 고통이 따른다
잠재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고통.
고려 대상이 되지 못하는 고통.
의견을 내더라도 남들이 들어주지 않는 고통.
조직에서 하찮은 일원이 되는 고통.
주위와 어우러지지 못하는 고통.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며 끊임없이
요구하는 세상에 부합하려고 노력하는 고통.
설사 이와는 다른 길을 선택하면 이제는 자유에 따른 또 다른 고통이 수반된다.
"자, 제가 이걸 만들었습니다.(자신이 선택한 일에 대한 결과, 성취의 증명)"라고 말하는 고통,
큰 영향력을 미칠 기회를 갖는 고통 말이다.
고통 없는 길은 없다.
어쩌면 고통을 피할 수 있어도 진정으로 중요한 일을 할 순 없다.
< 출처 : 지금 당신의 차례가 온다면, 세스 고딘, 한국경제신문 >
고통은 아기의 걸음마 연습과 같은 것
아기는 수천 번 넘어진 후에 비로소 두발로 걸을 수 있게 된다.
자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능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아기의 걸음마를 생각해 보자.
사실 아기가 처음으로 서거나 걷기를 시도할 때는 그 도전 자체가 어리석을 만큼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아기는 실패 또는 불가능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걷고 뛸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될 때까지 반복한다. 아기가 걷거나 뛸 수 있게 된 이유는 그의 신체가 성장했기 때문이 아니다. 쓰러지고 넘어지고 무릎이 깨지는 노력이 없었다면 어른이 되었어도 그는 걷지 못할 것이다.
아기의 노력과 성인의 노력의 차이점
아기의 노력(걸음마)와 우리의 노력에는 큰 차이가 있다.
걷기 위해 노력하는 아기의 고통은 위에 나열한 성인들의 고통보다 더 크다고 할 수도 있다. 아기는 넘어져 울기도 하지만 그 과정 자체를 즐긴다. 하지만 성인들은 노력을 즐기기보다는 애쓰며 감내한다.
성인의 노력에는 아기는 갖지 않는 '불신'이 있다.
과연 내가 이일을 해낼 수 있을까?
시간만 낭비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원하는 목표와 지금의 상태는 너무도 큰 격차가 있는데....
성인은 노력을 하면서도 자신 안에 있는 '불신'과 싸워야 한다.
밖으로는 넘어야 할 장애물과 안으로는 스스로 만들어낸 불신과 싸운다.
생각해보자.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때는 언제나 내 안에 믿음도 확실했던 때이다.
불가능한 일이지만 확신을 가졌기에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하는가?
아니면 될만한 일이었기에 마음속에 확신이 생긴 것이라 생각하는가?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떻게 생각하던 자유이다. 하지만 자신을 온전히 믿을 때 에너지를 한 곳에 집중할 수 있고 원하는 일을 훌륭히 해낼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아기의 도전과 같이 순수한 태도로 임할 때 우리의 잠재력은 발현된다.
순수함이란 신에게로 가까이 다가가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순수함은 내면의 신성(神性)을 깨운다.